foraert1234 2025. 6. 24. 17:19
철학적 자연주의의 이론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이오니아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글이었다. 특별히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탈레스가 처음으로 자연현상을 초자연적인 원인을 사용하지 않고 설명했다. 초기 그리스 철학에 대한 조너선 바르네스(Jonathan Barnes)의 소개는 이러한 초기 철학자들을, 자연주의를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경험적인 원리에 따라 자연을 연구한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방법론적인 자연주의의 근대적인 중요성을 파악하기 위해 좀 더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12세기 르네상스가 진행되는 동안에 나타난 중세 스콜라 철학자의 생각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중세 시대 후반기에 자연현상 연구는 기독교 자연철학자들의 작업으로 대표된다. 비록 그 연구들이 연구자들의 특성상 직접적인 신의 개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자주 자연 과학의 설명보다 기적에 더 현혹되는 당대 사람들의 우매함을 경멸하곤 했다. 파리 대학의 성직자 장 뷔리당(Jean Buridan)은 “아마도 중세시대 예술에서 가장 뛰어난 대가”라고 묘사되었던 사람이다. 그는 특이한 천문현상을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믿는 일반인들의 잘못된 습관과, 철학자들이 하는 “적당한 자연적 원인”에 대한 조사를 대조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교이었던 14세기 자연철학자 니콜 오렘(Nicole Oresme)은 여러 가지 자연의 신비에 대해 논의하면서 “원인을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믿는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천국이나, 연약한 자들의 피난처 즉 악마나 우리의 영광스러운 하느님이 그 신비 현상들을 직접 만드셨다고 믿을 이유는 없다.”라고 훈계했다. 갈릴레이 자연의 자연주의적인 연구를 위한 열정은 16~17세기에 걸쳐 점점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이 이 세계를 운영하기 위해 사용하는, 흔히 이차적인 원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찾는 데 관심을 집중하면서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철학을 앞장서서 촉진시킨 사람 중 한 명은 이탈리아의 가톨릭교도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그는 자연이 “자연에 가해진 법칙의 조항들을 결코 위반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였다.[4][5] 아이작 뉴턴이 그의 물리학에서 신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것을 지적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습니다.”(Hypotheses non fingo)라고 응답했다. 비슷하게, 라플라스는 천체의 역학에 대한 그의 이론에서 신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나는 그런 가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계몽주의 시대 동안에, 프랜시스 베이컨을 비롯한 철학자들과 볼테르는 자연 세계에 대한 연구로부터 초자연적인 힘을 제거하자고 호소하기 위해 필요한 철학적 정당화의 윤곽을 그렸다. 뒤따라 과학 혁명이 일어나면서, 당시 최고조에 달한 근대 생물학과 지질학의 발달 과정으로부터 여전히 남아 있었던 유신론의 잔재를 대부분 제거하게 된다. 그 당시 발달한 생물학과 지질학은 널리 퍼져 있었던 기독교의 창조 신화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을 거부하였다. 4세기 동안 과학적 연구는 실험과 이론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는 그 어떤 현상에 대해서도 결코 초자연적인 설명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물론 과학 실험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몇몇 특별한 현상에 대해서는 계속 순환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것은 과학적 이론이 지닌 그 자체의 권리로서의 자연주의를 지지하는 강력한 구조이다. ‘방법론적인 자연주의’라는 용어로 나타나는 이 접근은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졌다. 로날드 넘버스에 따르면, 이 용어는 미국 일리노이주 휘튼 대학의 철학자이었던 폴 드 브리에스(Paul de Vries)가 1983년에 만들었다. 드 브리에스는 신의 존재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학문으로서의 방법으로, 그가 ‘방법론적인 자연주의’라고 부른 것과,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으로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라고 부른 것을 구분하였다.[6] 다른 의견에 따르면, “방법론적인 자연주의”라는 용어는 1937년부터 에드가 셰필드 브라이트만(Edgar Sheffield Brightman)이 사용해 왔다. 그는 The Philosophical Review에 실은 글에서 일반적인 의미의 ‘자연주의’와 대조하여서 그 용어를 사용했지만, 그 생각이 최근에 이루어진 구분보다 정말로 발전된 것은 아니었다.[7] 1996년부터 책과 논문을 통해 계속, 로버트 T. 펜녹은 과학적인 방법이, 초자연적인 존재의 존재 여부를 추정하지 않는 자연적인 설명으로 제한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방법론적 자연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다. 또한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과학이 필립 E. 존슨 같은 창조론자나 지적 설계론의 지지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도그마적인 형이상학적 자연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려 하였다. 전문가로서 펜녹이 한 증언[8]은, 판사가 키츠밀러 대 도버 지역 학교 선거구 소송에서 방법론적인 자연주의가 오늘날 과학의 기반이 되는 규칙이라는 결론을 내릴 때, 인용되었다.[9] 창조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넘버스는 역사적으로 기독교인들이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지지해 왔다고 기록했다. “ 때때로 과학적 자연주의를 신이 없는 세계를 구성하는 데 사용하는 불신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현재까지 강한 기독교의 지원으로 유지되어왔다. …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과학적인 자연주의는 신실한 기독교인들에 의해 기독교의 영역을 넓게 만들어 왔다. 그것이 비록 종교적인 믿음을 부식시킬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때때로 그렇게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습관적으로 자연적인 원인을 통해 그의 종말을 이룩하는 신을 믿는 기독교도 과학자들 사이에서 번창했다. ” — 넘버스, 《신이 없는 과학: 자연법칙과 기독교 신앙》[4], p.284 인식론으로서의 자연주의 윌라드 반 오만 콰인은 자연주의를 자연과학 그 자체보다 진리를 위한 더 높은 법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입장이라고 설명한다. 과학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서 과학적인 방법보다 더 나은 것은 없고, 추상적인 형이상학 또는 인식론 같은 “첫 번째 철학”을 위한 어떠한 여지도 없다. 그런 철학은 과학 또는 과학적 방법을 정당화하거나 과학이 무엇인가를 입증한 후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그 자체의 가치를 추구하는 과학자들의 발견을 사용하는 데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또한 과학의 주장이 근거가 없고 혼란스럽거나, 모순될 때는 서슴없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철학의 방식은 과학과 연관된다. 자연주의는 과학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식의 근대적인 관점 같은 도그마적인 믿음이 아니다. 그 대신 그것은 간단히 우주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하고, 그런 과정들이 현대 과학이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것들이다. 철학적 비판